티스토리 뷰
신라 천년의 숨결이 깃든 불국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닙니다. 경주 토함산 기슭에 자리한 이곳은 불교 경전의 세계를 돌과 탑으로 구현한 거대한 상징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수학여행 코스, 세계문화유산으로만 알았던 불국사에는 1200년 전 신라인들의 깊은 철학과 첨단 기술이 숨어 있습니다. 과연 불국사라는 이름은 왜 붙여졌으며, 석가탑과 다보탑은 왜 그토록 다른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는 것일까요.

석가탑과 다보탑, 법화경을 돌로 세우다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은 신라 석탑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조합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라시대 사찰에는 감은사지 석탑처럼 똑같은 모양의 쌍둥이 탑이 세워졌습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크기와 조각 수법까지 완전히 동일한 쌍탑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불국사의 두 탑은 전혀 다릅니다. 석가탑은 간결하면서도 육중한 힘이 느껴지는 기단과 경쾌한 비례로 쌓아 올려져 단순하면서도 기품이 있습니다. 반면 다보탑은 석재를 목재처럼 자유롭게 사용하여 각 층마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대조적인 두 탑이 나란히 서 있는 이유는 법화경의 내용을 그대로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법화경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가 중생들에게 진리를 설법할 때, 과거의 부처인 다보 부처가 나타나 그 말이 진리임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석가탑은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다보탑은 이를 증명하는 다보 부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탑은 서로 다른 모습이면서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보탑의 화려한 구조는 법화경의 묘사를 충실히 따릅니다. 경전에는 다보탑이 높이 5백 유순, 너비 2백5십 유순이며 난간과 작은 방 천만 개, 무수한 깃발과 향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 다보탑을 보면 네모난 기단 위에 팔각 기단이 올라가고, 그 위에 기와집 같은 추녀를 얹은 사각 난간, 팔각정, 대나무 기둥, 연꽃 소반이 차례로 쌓여 있습니다. 이는 네모난 중생이 수행을 통해 팔각으로, 다시 원형의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다보탑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요소는 돌사자입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를 '사자후'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처럼 사자가 부처를 받치는 형상은 부처의 지혜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석가탑 역시 경전에 충실합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 바위를 깔고 앉아 깨달음을 얻었다는 내용을 그대로 표현한 팔방금강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부처가 앉은자리를 중심으로 사방팔방, 온 세계를 부처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불국사의 전부는 아닙니다.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세워진 불국사는 정치적 과시와 왕권 강화의 목적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당시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사회적 안정과 국가적 정체성 확립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불국사라는 이름 자체가 "부처의 나라"를 의미하며, 신라를 이상적인 불국토로 만들겠다는 국가 이념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석가탑과 다보탑의 조성은 순수한 종교적 발원뿐 아니라 신라 왕실의 정치적 의도가 결합된 결과로 봐야 균형 잡힌 해석이 됩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
1966년 석가탑 해체 복원 공사 과정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발견이 있었습니다. 2층 탑신 부분에서 가로세로 41cm, 깊이 19cm의 네모난 구멍이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국보급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금동사리함, 청동거울, 수정구슬, 향을 싼 천 등과 함께 가장 주목받은 것은 폭 6.7cm, 길이 6.1m의 두루마리 경전이었습니다. 바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입니다.
다라니경이란 부처님 법문의 핵심 요지를 농축시켜 뽑아놓은 것을 말합니다. 한문으로는 '총지(總持)'라 하여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글로는 짧지만 팔만대장경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석가탑에서 나온 이 다라니경이 특별한 관심을 받은 이유는 발견 당시 사용된 중국 측천무후 시대의 글자 때문입니다. 이는 적어도 751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8세기 초에 건립된 황복사 사리함 뚜껑에 새겨진 글씨와 석가탑 다라니경의 글씨체가 똑같다는 점도 연대 추정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이로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본 법륭사의 백만탑 다라니가 770년에 만들어져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었으나, 석가탑 다라니경이 이보다 약 20년 앞선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신라인들은 어떻게 이 다라니경을 만들었을까요. 먼저 정결한 몸으로 다라니를 한 자 한 자 정성껏 베껴 쓰는 사경 작업부터 시작됩니다. 글자 하나를 쓸 때마다 네 번 절을 할 정도로 지극한 마음을 담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쓴 글자는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쓰는 이의 혼이 담긴 결과물입니다. 사경 후에는 판각 작업에 들어갑니다. 폭 6.7cm의 작은 목판에 303자를 새기는 데는 13개월 이상이 걸렸다고 전해집니다.
실제 복원 작업에 참여한 장인의 증언에 따르면, 몇 밀리미터 차이로도 목판 전체를 망칠 수 있어 고도의 긴장과 집중력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파낼 수 있는 글자는 겨우 열 자 정도였으며, 목판 앞뒷면에 200여 자를 새기는 데 보름이 족히 걸렸습니다. 이렇게 사경하고 판각해서 탑 안에 보관했던 신라인들의 기술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종이 개발, 판각 기술 등 모든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왜 신라인들은 이 다라니경을 석가탑 속에 모셔야 했을까요. 탑에는 부처의 몸을 상징하는 사리와 함께 부처의 가르침의 요지인 법사리에 해당하는 다라니를 모심으로써, 이를 통해 지극한 기도를 하면 재난이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재난 없는 세상을 갈구했던 신라인들은 석가탑의 형태뿐 아니라 그 속까지도 경전의 세계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열망이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무영탑 전설과 연지, 신화와 역사의 경계
석가탑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무영탑'입니다. 백제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틋한 전설이 서려 있는 이름입니다. 아사달은 석가탑을 만들기 위해 신라 땅으로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고, 남편을 찾아 신라로 온 아사녀는 탑이 완공되어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면 남편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탑 그림자가 비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다림에 지친 아사녀는 결국 연못에 몸을 던집니다.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 '임자 없는 탑'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불국사 어딘가에 석가탑이 비칠 만한 연못이 실제로 있었을까요. 조선시대 차의 선사로 불리는 초의 선사의 시에는 "현지에 비친 무영탑 그림자를 보노라니 아사녀가 와서 보는 듯하구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분명 연못이 있었고 석가탑 그림자가 그곳에 비쳤다는 증거입니다. 1970년대 초반 불국사 대대적인 발굴 복원 공사 중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발굴 조사 중 비가 내려 웅덩이에 물이 고이자 말로만 전해지던 석가탑 그림자가 실제로 비쳤다는 것입니다.
불국사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청운교 남쪽에서 발굴된 연못은 동서 39.5m, 남북 25.5m의 타원형으로 깊이는 약 2~3m 정도였습니다. 돌로 쌓아 올린 인공 연못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청운교 앞 공터와 정원수 공간이 모두 연못 터에 포함됩니다. 1200년 전 신라인들은 청운교와 백운교 앞에서 규모가 큰 연못을 만났을 것입니다. 동국대 사찰조경연구소의 홍광표 교수팀은 불국사 연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현장 실측 조사를 진행했으며, 발굴 보고서의 연못 위치와 크기가 타당함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무영탑 전설과 고고학 자료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있습니다. 전설은 아사달과 아사녀라는 개인의 비극적 사랑을 통해 석가탑의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서사입니다. 반면 실제 연못은 불국사의 조경 설계와 의례 공간 구성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연못에 탑이 비치는 것은 불교적 상징성, 즉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가 물을 통해 연결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신라인들이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고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이해하는 단서로 삼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불국사는 종교적 신앙, 예술적 완성도, 국가 이념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공간입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법화경을 돌로 세운 경전의 구현이며,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 최첨단 기술과 신앙의 결정체입니다. 무영탑 전설과 연지는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불국사의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a45ZgFvV2l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