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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호리 유적의 철기 문화

연대주척자 2026. 3. 13. 10:42

기원전 1세기, 경남 창원 다호리 땅 속에서 백여 기의 무덤이 발굴되면서 한반도 남부 철기 문화의 진면목이 드러났습니다. 10년간의 보존 처리 끝에 공개된 통나무관과 함께 출토된 철제 도구들, 그리고 판상철부와 철정은 당시 사회가 단순한 농경 공동체가 아니라 생산·교역·권력 구조를 갖춘 복합 사회였음을 증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다호리 유적이 보여주는 철기 제작 기술, 판상철부의 용도 변화, 그리고 고대 아이언로드를 통한 국제 교역의 실체를 살펴보겠습니다.

 

다호리 유적
다호리 유적

 

다호리 통나무관과 철기 제작 기술의 발전

다호리 1호분에서 발견된 통나무관은 특이한 형태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통나무를 반으로 자르고 시신을 넣을 수 있도록 내부를 구유처럼 판 이 관은 상수리나무로 제작되었으며, 관의 양쪽 끝에는 수기 구멍을 내어 아래위 관을 결합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켰습니다. 관 모서리에 있는 네 개의 구멍은 밧줄을 걸어 관을 운반하거나 하관 하는 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박상진 교수팀의 분석 결과 이 통나무는 기원전 1세기의 것으로, 비중이 약 0.8에 달하는 매우 단단한 상수리나무였습니다.
이처럼 단단한 나무를 가공하려면 강력한 철제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통나무관 표면에는 나무를 찍고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으며, 다호리 무덤에서는 도끼와 자귀 같은 철제 도구들이 출토되었습니다. 다호리 사람들은 철기를 이용해 통나무를 자르고 내부를 파낸 후 시신을 관속에 놓고 수기를 박았습니다. 철기가 있었기에 통나무관의 제작과 운반이 손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는 철제 무기도 발견되었는데, 이미 이 시기에 청동 무기들이 철제 무기로 교체되고 있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철제 농기구의 출토입니다. 기존의 목재나 석제 농기구 대신 오늘날 농촌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형태의 철제 농기구들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다호리 지역에서 나오는 삼각형 철촉이나 따비 같은 철기들은 다른 지역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새로운 형태로, 이는 다호리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철기 제작 기술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무덤 속에서 발견된 철광석과 망치는 다호리 사람들이 직접 철기를 제작했음을 말해주며, 검은 칠을 한 청동 칼집과 붉은 응칠이 된 철검의 손잡이는 그들의 철기 제작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증명합니다. 칠은 방수와 녹 방지 역할을 하며 윤기를 더해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다호리 1호분 통나무관에서는 특이한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일부러 짝을 맞춘 듯 두 개의 도끼를 한 쌍으로 묶어 놓은 것과, 시신의 허리쯤에서 발견된 유물 바구니 속의 붓과 작은 주머니칼이 그것입니다. 종이가 없던 시대에는 대나무 위에 붓으로 글씨를 썼고, 주머니칼은 지우개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 붓은 함께 출토된 중국 수입 유물들, 즉 허리띠 버클과 종방울, 중국 거울 등과 함께 발견되어 교역을 기록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쌍의 도끼는 교역품이었고, 붓과 칼은 교역을 기록하는 용도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다호리 사람들이 단순히 철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교역 활동을 전개했음을 보여줍니다.

판상철부에서 철정으로: 중간 소재의 진화와 유통

다호리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특이한 것은 판상철부입니다. 납작한 쇠도끼 모양의 이 유물은 처음에는 그 용도를 알 수 없었습니다. 뭉툭한 날을 비롯해 전혀 사용된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제품의 철제 도구들이 함께 출토되면서 판상철부의 용도가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판상철부는 자루에 끼워 도끼로 사용하거나 끈으로 묶어 자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판상철부의 진정한 용도는 따로 있었습니다.
경주 사라리 130호분에서는 무덤 바닥에 판상철부가 무려 70매나 깔려 있었습니다. 마치 판상철부가 무덤 주인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단조철부는 물론 실용으로 사용되었지만, 경산 임당동 유적이나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판상철부의 형태를 볼 때 이것은 단순히 실용적인 도끼가 아니라 당시의 재화적 가치로서 유통품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김해 양동리 유적에서는 각종 철기들과 함께 판상철부 수십 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모양이 납작 도끼와는 달리 길쭉하게 변형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판상철부가 도끼의 역할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녹여 다양한 철기를 만들 수 있는 철의 덩어리, 즉 하나의 화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신경환 박사가 창원 삼동에서 출토된 판상철부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는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전자현미경에 나타난 판상철부는 입자가 미세하여 많이 두드렸다는 증거였지만, 이상하게도 탄소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강철이 되려면 탄소가 많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초기 단계에서 강철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일부의 탄소만 남아 있었습니다. 보통 철제 도구는 탄소 함유량이 0.4% 이상인 데 비해 판상철부는 0.3% 이하였습니다. 이는 판상철부가 무기나 생활도구를 만들기 전 단계인 중간 소재였음을 증명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판상철부는 그 크기와 형태가 변화했습니다. 4세기 무렵의 무덤인 복천동 22호분에는 무덤 바닥에 커다란 덩이쇠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철정이라 불리는 이 덩이쇠는 길이가 50cm에 달하며, 판상철부 두 개를 맞붙여 놓은 모양으로 양쪽에 날이 있습니다. 도끼 모양의 판상철부가 철정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4세기에는 비교적 대형 철정이 많았으나, 5세기에 접어들면서 초기에는 대형 철정이 나오다가 5세기 중엽부터 철정이 작아지면서 규격화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철정 자체가 하나의 가치 기준으로 되었기 때문에 규격화되고, 또 그 가치 기준의 상황이 변화되면서 소형화되는 추세로 볼 수 있습니다.
홍익대 박장식 교수는 철정이 이전의 판상철부에 비해 한 단계 더 진전된 중간 소재임을 밝혀냈습니다. 철정 각 부위의 탄소량을 조사한 결과 날 부분에 탄소가 첨가되어 있어 강철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사용자가 철정을 구매하면 그 부분에 탄소만 집어넣어 주면 되므로, 하루만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담금질을 해서 강화시킬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철정을 반으로 나누면 도끼가 되고, 여러 개로 자른 뒤 끝부분만 오므리면 쐐기가 되며, 여러 개로 자른 철정을 다시 반으로 잘라 끝부분을 두드리면 화살촉이 되는 것입니다. 몇 개 안 되는 제품을 이용해 철기 시장 전체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던 것입니다.

고대 아이언로드: 변한 진한에서 일본까지

판상철부와 철정의 유통 단위는 10 매였습니다. 양동 162호분의 판상철부는 10매씩 묶여 있었고, 철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개의 철정을 묶기 위해 끈이 필요했을 것이며, 실제로 복천동 22호분 대형 철정이나 복천동 10호분 소형 철정에서도 끈으로 묶여 있는 양상이 보입니다. 이는 운반하기 위해 묶어서 운반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연합되는 수량이 복천동 22호분에서는 20매, 복천동 10·11호분에서는 70매 등 10매 단위의 양상을 보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3세기에도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히 심다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서 가치 기준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10으로 면합되었던 것입니다. 일본서기의 기록도 판상철부나 철정이 10 단위로 유통되었음을 뒷받침해 줍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은 판상철부가 단순히 내수용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진한이 낙랑·대방·왜국·한"에 철을 공급했다는 기록에서 말하는 철은 바로 중간 소재인 판상철부였던 것입니다. 3세기 초 동북아시아 상황을 보면, 변한·진한은 고구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 철을 공급했습니다. 그렇다면 변한·진한의 철은 어떤 루트를 따라 이 지역으로 건너갔을까요?
경남 사천 앞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 늑도에서 1985년 기원전 1세기의 고대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늑도에서 발굴된 토기의 70%는 기원전 1세기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와질토기였지만, 낙랑계 토기 파편도 섞여 있고 붉은 칠을 한 일본의 야요이 토기도 상당수가 발굴되었습니다. 규슈 지방의 야요이 토기도 있고, 야마구치 지방의 야요이 토기도 있으며, 더 동쪽으로 나아가서는 오카야마 현 일대의 야요이 토기도 있어서, 일본 야요이 토기라도 여러 곳에서 온 것이 최근 자료 분석 결과 밝혀지고 있습니다. 늑도의 인골에는 고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발치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늑도에서 출토된 중국 화폐 반양 전은 이곳이 고대 국제 무역항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곳 늑도총에서 판상철부 두 점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변한·진한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VXP8ks_a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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