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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고려청자 발굴의 비밀 (수중발굴, 목간발견)

연대주척자 2026. 3. 21. 08:57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22,000여 점의 고려청자는 단순한 유물 인양을 넘어, 12세기 고려의 해상 교역과 도자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증거입니다. 주꾸미 통발에서 우연히 시작된 발견은 한국 수중 고고학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기록되었습니다.

 

고려청자

 

태안 해역 수중발굴의 역사적 의의

태안 대섬 남쪽 해역은 조수가 빠르고 간만의 차가 큰 지역으로, 고려시대부터 선박 침몰 사고가 빈번했던 곳입니다. 이 지역은 세곡선이 개경으로 향하던 주요 항로였으나, 거센 물살과 복잡한 해류로 인해 '난행양'이라 불릴 만큼 위험한 바다였습니다. 실제로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굴포 운하를 건설하려는 시도까지 있었을 정도로 항해의 어려움이 컸습니다.
2007년 5월, 20년째 주꾸미 잡이를 하던 김용철 씨는 소라 통발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꾸미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구를 막는 데 사용한 것이 조개껍데기가 아닌 청자 접시였던 것입니다. 이 우연한 발견은 해양유물전시관 수중발굴팀의 긴급 탐사로 이어졌고, 수중 음파 탐지기를 통해 대규모 청자 매장이 확인되었습니다.
발굴팀이 수심 10m 아래로 내려갔을 때, 갯벌과 수초에 뒤덮인 청자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육안으로도 최소 3층 이상으로 보이는 청자들은 상당수가 완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갯벌이 오랜 세월 동안 청자의 형태와 색을 보존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발굴팀은 기존의 2m 그리드 대신 1m 간격의 세밀한 그리드를 설치하여 유물의 적재 상황을 정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이번 발굴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유물 인양이 아니라 현장 상태의 철저한 기록과 실측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1976년 신안선 발굴 당시에는 전문 기술이나 장비가 부족해 해군 잠수부에 의존했고, 고고학자들은 선상에서 유물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태안 발굴에서는 전문 잠수사가 직접 수중에서 유물의 위치를 확인하고 기록하며, 학문적 정보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목간발견과 청자 유통의 증거

태안 청자 발굴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고려시대 목간의 발견입니다. 수십 차례의 수중 발굴에서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고려시대 목간이 청자 더미 속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목간은 오늘날의 화물 운송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청자가 만들어진 지역과 최종 목적지, 수량, 책임자의 서명까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적외선 촬영을 통해 분석한 첫 번째 목간에는 "탐진 재경 대정 인수 부기 80"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지금의 강진 지역에서 만든 사기 80개를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목간에는 "재경 안영호 부 사기 일과"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는 서울(개경)에 있는 안영호라는 인물에게 도자기 한 꾸러미를 보낸다는 뜻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 목간의 발견은 그동안 도자기의 양식과 기법을 근거로만 추정해왔던 산지와 유통 경로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최초의 문자 기록입니다. 강진에서 제작된 청자가 배를 통해 개경으로 운송되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자료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는 도자기 운반과 유통 과정이라는 연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청자와 함께 발견된 나무 쪼가리들은 당시 선적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청자를 지탱시켜 주던 쐐기 목재부터 선체 파편까지, 선적에 사용된 적재 방법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청자의 종류별로 30개씩 포장한 뒤 좌우에 나무막대로 기둥을 만들어 새끼줄로 단단히 묶는 방식이 확인되었으며, 항해 중 충격을 줄이기 위해 완충제로 사용했던 짚의 흔적도 남아 있었습니다.

강진 청자제작 기술과 12세기 고려의 미의식

목간을 통해 확인된 청자의 생산지는 강진이었습니다. 강진은 고려시대 최고의 청자 생산지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청자 가마터만 200기에 달합니다. 당시 이곳에는 청자를 굽던 인구와 식솔들 약 2만 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강진의 흙은 다른 지역보다 고운 입자를 가지고 있어 색과 모양을 내기에 좋았습니다.
청자 제작 과정은 매우 정교했습니다. 먼저 딱딱하게 다진 흙을 물에 섞어 채에 걸러낸 후, 며칠 동안 가라앉힌 고운 앙금만을 걷어내 반죽으로 사용했습니다. 반죽에 공기가 들어가면 가마에서 구울 때 깨지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태안에서 발굴된 청자들은 접시와 대접 같은 생활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참외형 주자와 두꺼비형 벼루 같은 특별 주문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청자의 문양은 음각, 양각, 철화 등 다양한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파도를 타고 가는 물고기 같은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미감을 보여주는 문양들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12세기 고려청자가 단순한 공예품을 넘어 예술적 가치를 추구했음을 보여줍니다. 청자 바리때에 그려진 화염문 음각은 매우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었으며, 철화 문양을 섞어 표현한 청자 벼루는 드문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발굴된 청자의 80% 이상이 완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 빛깔은 '비색'이라 불리는 가을 하늘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강진의 우수한 제작 기술과 더불어, 갯벌이라는 특수한 매장 환경이 9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청자를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사자 모양의 향로는 수염과 이빨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이전까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형태였습니다.
선상 생활용품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철제 삼발이 솥과 도기 항아리 속에는 생선 뼈가 담겨 있어, 선원들이 젓갈을 담아두었던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돌에는 그을음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떡을 쪘던 시루와 양념을 담았던 단지, 숫돌 등은 당시 뱃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12세기 고려의 해상 교역이 단순한 상품 운송을 넘어,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함께 움직이는 과정이었음을 증명합니다.
태안 고려청자 발굴은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지만, 체계적인 수중 고고학 방법론을 통해 한국 도자사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습니다. 목간의 발견은 문헌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실제 유통 과정을 밝혀냈으며, 완벽하게 보존된 청자들은 12세기 고려인들의 미의식과 기술 수준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일부 해석에서 지나치게 단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이번 발굴이 한국 수중 고고학 역사에서 갖는 의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출처]
영상: KBS 역사스페셜 - https://www.youtube.com/watch?v=e0C0o8FFyWw